<창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스웨덴의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이 원작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8백만 부가 팔린 책이라고 하네요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역시 역사적인 사건과 한 개인의 삶을 교묘히 연결한 솜씨와 개그입니다 <프레스트 검프>나 <국제시장>이 떠오르게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폭약, 다이너마이트가 나오는 걸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노벨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벨을 찾아보니 이 영화의 주인공 알슨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더군요 알선 캐릭터의 모티브는 노벨인 것 같더군요
알슨은 노벨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폭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알슨의 아버지가 꿈(콘돔)을 이루기 위해 러시아로 갔다가 죽음을 당하는데 노벨의 아버지는 러시아에 기뢰와 지뢰를 납품하다 패가망신했다고 합니다
노벨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알슨은 정관수술(혹은 거세)을 당해 독신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되죠
이 영화의 기본적인 사상 정서는 삶에 대한 달관인 것 같더군요 인생사 새옹지마, 복은 화를 불러들이고 화는 복을 불러들이고 실과 득 생과 사가 하나라는 동양의 사상과도 얼핏 비슷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알슨이 인생의 달관적인 태도를 갖게 된 계기는 어머니가 죽기 전에 한 말입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고 세상은 살아가게 되어 있다"
어린 알슨의 버팀목이 되어줘야 할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에 알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계기가 정관수술(설마 거세는 아니겠죠?)이라고 보입니다 왜 정관수술(혹은 거세)일까? 노벨이 정관수술 (혹은 거세)를 당했다는 기록도 없는데?
알슨은 영화 전반에 걸쳐 부귀영화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더군요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만의 소소한 즐거움 같더군요
이런 과정은 남성의 욕망의 제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환관들이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성욕(번식욕)이 모든 욕망의 근원이라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알슨이 인생에 대해 달관하게 된 계기가 되는 거죠
달관이란 인생의 진리를 꿰뚫어 보아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않고 넓고 멀리 바라보거나 그러한 경지를 말한다고 합니다 달관한 사람은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수전증 의사에게 정관수술(혹은 거세)를 당한 알슨은 그 후유증으로 쉬기 위해 들린 곳이 폭탄 공장으로 그의 재능을 꽃 피게 되죠
알슨의 인생에서 알슨의 의도대로 무언가를 노력해서 얻은 것은 없어 보입니다 오직 우연성만이 가득한 인생이죠 파시스트 프랑코를 구한 것도 핵무기를 만든 것도 스탈린을 죽게 한 것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것도 이런 역사적인 사건에 기여한 알슨은 의도나 노력이 아닌 우연일 뿐이죠
딱 한번 알슨이 의도하고 노력한 것이 있습니다 감옥에서 탈출하고자 아인슈타인의 모자란 동생을 설득하는 부분이죠
하지만 1년의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 동생 하버트는 알아듣지 못하자 결국 포기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하버트가 가져온 수류탄으로 감옥을 탈출하게 되죠
이런 유연성이 영화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상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달관보다는 인생의 우연한 요행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네요
노벨의 인생을 비춰보면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정확히는 바리스타이트)를 만들어 엄청난 부를 거머지지만 '죽음의 상인'이라는 말도 듣게 됩니다
노벨은 바리스타이트를 개발하면서 "이런 강력한 무기가 있으면 전쟁할 엄두가 안 나겠지?"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영화 속에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를 두고 한 말과도 비슷한 생각이죠
노벨이 자신의 부귀영화만은 추구한 죽음의 상인이었는지 아님 평화를 이루려고 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말년에 전 재산으로 노벨상을 만든 것만 보면 적어도 말년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에는 동의하지만 우연으로 가득한 인생에는 동의할 수 없겠죠
개인적으로는 인생사 새옹지마이고 우리의 의도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인사대천명해야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왜 사람들은 나를 보고 고함을 지르지?"
알슨이 자주 묻는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고함을 지른다는 것은 사소한 일에 (적어도 알슨이 보기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코미디 영화답게 유머와 위트로 잘 표현한 것 같더군요
결말은 알슨이 베니와 구닐라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후대를 남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됩니다
비록 알슨의 친자식은 아닐지라도
이 영화 제목은 너무 깁니다 관객에서 쉽게 기억되고 각인되어야 하는데 책 제목 그대로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포스터에 김일성이 나오는데 한국 관객을 향한 낚시질입니다 소설에는 나온다고 하는데 영화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 전반부는 노인이 주인공이고 익숙한 한국식이나 미국식 개그의 감각이 아닌지라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 상당히 재미있어지더군요 나도 완주를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본 게 아까워 좀 더 보자하다가 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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