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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해석 결말 - 현실과 이상 (스포주의)

by 올영 2019. 1. 16.

주의 : 결말까지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관람객 1200만명이 넘은 흥행대작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일기의 15일간의 기록이 누락된 것에 착안하여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의 느낌은 그 정도로 흥행에 성공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라는 것이였습니다

 

대부분은 흥행한 영화나 또는 반대로 실패한 영화의 경우 그 결과에 대해 공감하는데 드문 경우지만 간혹가다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긴 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왕자와 거지> 이후로 여러 영화에서 나온 설정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카게무사> <데이브>의 표절논란도 있습니다

 

 

 

예측이 가능한 전개와 결말 그리고 전반부는 웃음 후반부는 눈물이라는 한국영화의 공식까지 그리 새롭진 않았습니다

 

나로서는 이런 흥행결과에 공감하지 못하므로 영화내적인 무언가가 한국관객들에게 어필한 부분이 있었겠지만 영화외적인 부분을 찾아보게 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개봉한 시점이 18대 대선선거 3개월전이였다고 합니다

 

이상적인 왕의 모습이라는 소문에 정치인이나 언론에서 언급되기도 하는 등 시대적 배경도 영화흥행에 일정부분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이후에 보수정권에 의해서 좌파영화로 찍히게 된다고 합니다

 

당시 집권세력이 보수정권이였고 실제 무력하고 이기적인 광해군의 모습과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인간미있는 가짜 광해군인 하선의 대비는 현재 집권세력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될 수 있고 영화 결말에서 자막으로 광해군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왜냐하면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중심으로해서 진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최근들어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외치는 잘했고 내치는 못했다'라는 평이 있다고 합니다

 

외치는 명나라와 청나라사이에서의 중립외교에 대한 평가이고 내치는 궁궐공사로 민생을 피폐하게 한점과 2인자인 이이첨이 주도한 정적제거를 위한 각종 옥사와 계모 인목대비폐비와 영창대군, 임해군을 죽인 것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리고 이런 과도한 숙청과 정적제거가 인조반정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과 과가 있듯이 광해군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인 평가도 바람직하진 않은 듯 합니다

 

영화속에서도 나오지만  대동법에 대해서 광해군은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관객에게 광해군에 대해 가르치는데 " 땅을 가진 이들에게만 조세를 부과하고 제 백성을 살릴려고 명과 맞선 단 하나의 조선의 왕이다"라고 자막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주입식교육도 영화상 자연스럽지도 않았지만 영화에서 진짜 광해군은 부정적으로 묘사했는데 이런 광해군에 대해 긍정적인 자막의 마무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하선의 영향으로 진짜 광해군이 변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리 긍정적으로 변해가진 않은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진짜 광해군과 가짜 광해군인 하선의 모습을 통해 이상적인 왕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허균이 "진짜 왕이 되시든가"라는 말에 하선은 "내 꿈은 내가 꾸겠소"라는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선이 현실정치에 뛰어들지 않는 것을 두고 무력하다는 평도 봤는데 만약 영화가 하선이 진짜 광해군을 대체한다면 가벼운 판타지물이 되어 여운을 남기진 못했을 것입니다

 

하선이 진짜 왕이 되려면 진짜 광해군을 죽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하선의 선한 심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하선과 같은 왕은 꿈에서나 가능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혹자는 광해군은 성군의 자질을 타고났지만 외부환경의 영향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어떤 개인도 불완전하고 그건 집단지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비현실적인 성군의 재림을 기다리기보다는 우리 하나하나가 성군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세상입니다

 

지난 우리 사회의 지난 수십년의 과거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완전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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