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결말까지 스포가 있습니다
예전에 포스터를 보고 <정글 북> 비슷한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반나체의 소년과 맹수가 나오면 <정글 북>이 떠오르는 선입견이 무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네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신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내가 <정글 북>이라고 오해했듯이 동물이 나옵니다
즉 이 영화는 동물, 인간, 신 이렇게 세 가지의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더군요 물론 주인공도 감독도 관객도 인간이니 인간의 관점에서입니다
우선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파이가 조난당한 후 살아돌아오기까지의 첫 번째 버전의 이야기로 영화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파이와 호랑이인 리처드 파크는 첫 번째 버전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목마름'이라는 이름으로 두 존재가 동일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성당에서 신부가 파이에게 " You must be thirsty"라고 말하고 리처드 파크의 원래 이름이 thirsty(목마름)이었죠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두 번째 버전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파이와 호랑이인 리처드 파크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정리해줍니다
리처드 파크는 실제로 1884년 인육 취식 사건의 피해자의 이름이기도 하고 소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서 표류자들이 잡아먹은 선원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구명보트의 천막 속에서 갑자기 뛰어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 리처드 파크는 파이(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통 다른 후기를 보니 무의식으로 해석하던데 어느 정도는 비슷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물적 본성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극한 상황 생명의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는 오직 인간에게는 내면 깊숙이 봉인해 놓은 동물적 본능이 튀어나오게 되는 거죠
파이의 아빠는 파이에게 "짐승과 인간은 친구가 될 수 없다"라며 교훈을 주겠다며 염소를 묶어놓고 리처드 파크가 잡아먹는 것을 파이에게 보여줍니다
원작 소설과 두 번째 표류기 버전의 이야기에서도 나오지만 파이(리처드 파크)와 주방장(하이에나)은 살인과 식인을 합니다 즉 짐승과 다름없는 인간의 모습이죠
리처드 파크는 파이가 멕시코 해안에 도착하자 밀림 속으로 사라집니다 극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문명사회로 돌아온 파이에게 동물적 본능은 떠나버리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내면 깊숙이 봉인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파이의 아빠의 말대로 짐승과 인간은 친구가 되기에는 인간이 너무 멀리 왔습니다 동물적 본성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에게는 터부시 되는 것일 뿐입니다
첫 번째 버전의 표류기는 파이가 자신의 동물적 본능을 드러낸 사실을 감추기 위한 <정글 북>같은 판타지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가와 일본인 보험사 직원들이 호랑이(동물) 버전인 첫 번째 표류기를 처음에는 믿지 않지만 두 번째 인간 버전의 표류기를 듣고 나서는 호랑이(동물) 버전의 표류기를 선택합니다 어느 것이 진실이든 인간들이 서로 살육하고 식인하는 인간 버전의 표류기를 인정하기에는 마음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들은 자신의 동물적 본성을 감추는 것으로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거죠
두 번째는 인간과 신(종교)의 관계입니다
난 이 영화의 종교관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실용적 종교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파이라는 별명은 수학시간에 외웠던 파이(3.14)입니다 그 이하 소수점은 끝도 없이 계속되죠 어떻게 보면 파이의 아빠의 말대로 종교와 대립되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과학의 바탕이 수학이죠
하지만 파이의 끝도 없이 계속되는 소수점은 수학 과학의 한계점을 말하고자 함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의 시대에도 인간의 의문은 계속되고 있는 거죠
파이는 3개의 종교를 믿습니다
힌두교에서 믿음을 얻고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배웁니다 이슬람교를 통해 마음의 안식을 얻기도 합니다
파이는 하나님과 예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힌두교신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랍어도 모르죠 하지만 각각의 종교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 있습니다 얼마나 실용적인 종교관인가
파이의 가족의 식사 장면이 이 영화의 종교관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파이의 아빠는 종교가 아닌 이성과 과학을 강조하지만 엄마는 과학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무엇을 믿든 상관없지만 맹목적인 믿음은 안돼. 이성적인 사고를 가져라"라는 아빠의 말이 바로 이 영화의 종교관입니다
이런 맹목적인 믿음(이건 다른 말로 실용적이지 못한 거죠)에 대한 경계는 미어캣 섬의 에피소드에서도 나옵니다
폭풍우 끝에 떠다니는 미어캣 섬에 도착해 구원을 얻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낮에는 희망을 밤에는 절망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섬 전체를 보여주는데 바로 영화 초반에 힌두교의 우주의 바다에서 떠다니며 잠을 잔다는 비슈누신의 모습이었죠
파이는 비슈누신의 품에서 구원과 안락을 얻어 안주했다면 그 섬에 잡아먹혔을 것입니다 즉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경계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갖고 있어야 하는 거죠
파이가 다시 리처드 파크(인간의 동물적 본성)를 데리고 표류를 시작하는 모습은 인간이 동물적 본성을 지닌 채 종교에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결말 부분에서 파이는 작가에게 동물버전 표류기와 인간 버전의 표류기 어느 것을 선호하는가라고 묻습니다 작가가 동물버전을 선택하자 갑자기 파이는 "신의 존재도 믿음의 문제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배 침몰의 원인과 어느 버전이 진실인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인간 버전을 선택하죠 그것이 그에게 마음의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이해하든 또는 그것이 진실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종교에서 영혼의 안식이든 또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한 것이라는 말처럼 이해되더군요
동물과 신의 중간 어딘가에서 표류하는 인간들에게 영화가 그리고 원작소설이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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