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인랑 (애니) 해석 결말 - 조직의 부속품 (스포주의)

by 올영 2018. 12. 5.

주의 : 결말까지 스포가 있습니다


<인랑>은 예전에 본 기억도 있고 (보다 말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김지운 감독이 통일한국 배경으로 각색하여 실사화한다고 하여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인랑>은 <견량 전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고 <견량 전설>은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만화라고 합니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의식은 조직과 그 조직에 종속된 개인의 이야기인 것 같더군요 원작인 <견량 전설>에서는 늑대가 아닌 개로 표현된다고 합니다 조직(주인)에 충성하는 개(개인)라는 해석이 있던데 거의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1960년대 일본의 테러조직이었던 적군파를 포함한 일본의 좌익운동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어디에도 이념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 나오더군요 <인랑>의 주제의식은 이념이 아닌 이념이나 조직에 종속된 인간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인랑>의 초반부에 '빨간 두건단'(폭탄 운반책)의 일원인 아가와가 하수구로 이동 중 후세와 마주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후세가 자폭하려는 아가와를 쏘지 못한 것이 서사구조의 시작이 됩니다  ( 후세가 덫을 치려고 일부러 아가와를 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더군요)

후반부에 헨미는 인랑인 후세에게 쫓기다가 막다른 곳에 이르자 " 왜 그때 소녀를 쏘지 않았는가? 나와 소녀가 뭐가 다른가?"라고 절규하듯 묻습니다

후세는 특기단에 헨미는 공안부에 그리고 아가와는 테러 조직 섹트를 위해 일합니다 즉 그들은 조직에 종속되어 개인의 삶이나 양심, 인간성 등은 이미 버린 지 오래되었죠




하지만 후세가 아가와를 쏘지 못한 것은 아가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폭하려는 아가와에 게 "왜?"라고 묻습니다 아가와는 아무 말이 없지만 고개를 가로졌습니다 그 표정에는 적의나 분노는 느껴지지 않더군요

아가와는 특기대를 피해 하수구로 달아날 때 출구의 빛만 보이는 터널처럼 보이는 곳을 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테러리스트에 대해 이스라엘 심리학자 아리엘 메아리는 '터널'을 이용해서 설명한다고 합니다 터널이라는 조직에 갇히게 되면 외부(빛)와는 차단되고 출구의 빛 한 점에만 집중하며 가게 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규모 집단의 규칙과 가치관에 자신도 모르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독이 이 터널을 알고 사용한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가와는 섹트라는 터널에 종속되어 자폭외에는 다른 선택은 없었던 듯 보입니다

그런 아가와의 모습은 특기대 그중에서도 인랑이라는 조직에 종속되어 자아의 주체성을 상실한 후세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겠죠



그럼 헨미는 아가와와 무엇이 달랐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헨미는 조직에 영혼까지 종속되어 있다기보다는 조직을 이용해 개인의 출세를 이루려는 유형에 더 가깝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특기대 양성소 출신이면서도 친구인 후세를 이용하여 특기대를 해체시키려고 했던 것이 그렇습니다  후세와 헨미가 처음 만나는 동물원 장면에서 자신은 특기대 양성소 출신이라 괄시 받는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출세에 제약이 있는 거죠




아미미야는 '빨간 두건단'의 일원이었다가 사로잡혀 공안부로 끌려가 일종의 전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후세를 낚는 미끼로 사용되죠 그녀는 아마도 고문과 세뇌를 당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빨간 두건단'이라는 조직에 종속되어 사람을 죽이는 폭탄을 나르던 그녀에게 새로운 공안부라는 조직으로 전향하는 것은 기존의 가치관과의 충돌이었을 것입니다

아미미야는 후세에게 왜 특기대에 들어갔는지를 묻습니다 후세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은 것 같아"라고 대답합니다




조직에 종속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여 자신을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곳이 살아갈 곳이 된다고 하더군요 이런 현상은  엘리트층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테러리스트 중에도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군요

후세가 사회에서 어떤 가치와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특기대 그리고 인랑에서 후세를 인정해 주니 그 조직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게 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에 종속된 인간은 조직에 충성하는 충견이 될 뿐이겠죠

그를 짐승 또는 늑대라고 부릅니다 이건 조직에 의한 일종의 심리 조작이고 세뇌입니다 마치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적함에 자폭하던 가미카제 특공대와 마찬가지 경우라고 할 수 있죠

후세는 충견이 되었던 늑대이던 짐승으로 길들여졌지만 인간인 이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가 악몽을 꾼다거나 결말에서 아미미야를 죽여 빨간 두건 동화를 완성하는 장면에서의 갈등이 그러합니다

아가와 죽음과 그리고 아가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쏘지 못한 후세 리고 아미미야가 '같이 죽어 기억되고 싶었다'라는 절규는 조직에  종속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죽음이라는 방식이 유일한 구원으로 보여 서글퍼지더군요




헨미는 아미미야에게 "동화에서는 항상 늑대가 악역이다"라고 말합니다 동화를 조직으로 보고 늑대를 그 조직에 종속된 개인으로 보다면 늑대는 조직에 충실한 것이 됩니다 사실 자연상태의 늑대가 악하다고 할 수 없겠죠 결과적으로 조직에 종속된 개인이 악역이 되는 거죠

조직이나 진영, 이념, 종교 등에 종속된 인간의 모습은 지금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도 개인 차원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도 적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더군요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는데 출세든 성공이든 생존을 위해서든 조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조직에 종속된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과 양심을 잃게 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더군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