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결말까지 스포가 있습니다
<애프터 라이프>는 포스터의 카피가 영화의 내용을 잘 표현한 것 같더군요 사실 포스터가 관객을 현혹하는 낚시인 경우도 많이 봤거든요
영화는 포스터의 카피처럼 미스터리입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감독의 의도가 이러하다면 사실 완벽한 해석은 거의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마 감독 불러다 놓고 해석시켜봐도 완전히 납득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후기를 몇 개 보니 역시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더군요 어느 쪽이 전적으로 맞는다고 하기에는 허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스터리가 완벽히 해석된다면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감독의 의도를 존중해 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애나의 죽음과 장의사의 정체를 흐릿하게 드러내 영화의 메세지 즉 인생의 의미를 묻고자 한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전반부에서 내가 생각한 <애프터 라이프>의 이야기는 영적 능력이 있는 장의사와 망자의 이야기 비스름한 것이었습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엘리엇이 영적 능력이 있는 장의사 수준을 넘어선 존재처럼 보이더군요 우리나라에서의 저승사자같은 존재에 더 가까운 것 같았습니다
엘리엇이 하는 일은 망자의 삶에 대한 미련을 끊고 저승으로 보내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망자의 삶에 대한 미련이 강하다면 그 망자는 이승을 떠도는 귀신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엘리엇이 죽은 자들과 대화를 하고 잭도 죽은 사람과 교감을 나눕니다 그리고 엘리엇이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죽은 사람은 어머니라고 하죠 그런 의미로 본다면 혼이 나간 표정으로 TV만을 보고 있는 잭의 어머니도 이미 죽은 자인 것 같더군요 이승을 떠도는 귀신같은 거죠
하지만 엘리엇은 폴에게 애나의 묘지로 가서 애나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인해보라고 충동질합니다 그리고 그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잭과 함께 기다리고 있더군요
엘리엇의 후계자가 된 잭은 폴의 죽음을 암시하듯 폴에게 "안전벨트를 꼭 매세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엘리엇은 단순히 사이코패스나 미치광이 수준이거나 저승사자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엘리엇은 망자들의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한국 영화 <곡성>에서도 나오죠 '사진을 찍히면 영혼을 뺏긴다'라는 미신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런 미신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후반부로 가면 엘리엇이 이렇게 폴의 죽음을 유발하고 사진으로 영혼을 빼앗아간다는 점에서 단순히 저승사자의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죽음의 사신? 혹은 악마의 수하? 이 영화는 <곡성>처럼 오컬트적인 심령 영화 또는 호러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식스센스>로 시작해서 <곡성>으로 끝난 느낌이랄까
이 영화는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영화 내용도 헷갈리게 해놓고 주제도 어렵네요
내가 생각하기에 쉽게 말해서 "너에게 행복이란? 그 행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게 살다 죽을 때 되어 후회와 미련만 남기고 떠날 거야?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야?" 머 이런 거 같더군요
이건 엘리엇이 장례식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애나를 치장해 주며 나눈 대화에 잘 드러납니다 보통 마음의 상처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죠 애나는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랑하는 폴을 밀쳐내고 있었죠
애나의 행복은 사랑이었고 이미 폴의 사랑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 행복을 갖지 못한 채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죠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죽을 때가 가까워오자 깨달은 거죠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데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해 알지도 못한 채 그리고 그것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엘리엇은 애나에게 세상으로 나갈 기회를 줍니다 하지만 애나는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영안실에서 세상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어쩌면 인간들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못 벗어난 채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애나는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행복을 얻을 기회 앞에서도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모습이죠
인간은 인생에서 시작점이 탄생과 종착점인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 과정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삶이 행복해서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약 애나처럼 죽음을 경험한 경우(또는 경험했다고 믿는 경우)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것을 선택할까요? 삶을 다시 시작하는 두려움과 죽음의 두려움 어느 쪽의 두려움이 더 클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도 그 선택은 인생의 과정을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생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했다면 주저 없이 삶을 선택하겠죠
갑작스럽게 죽음의 사신이 찾아오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꼬드겨도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달라는 당부의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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