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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코코 해석 결말 - 따뜻하지만 새롭진 않은 가족주의 (스포주의)

by 올영 2018. 12. 20.

주의 : 결말까지 스포가 있습니다

 

<코코>는 흥행과 평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네요
옥에 티라면 표절 논란도 있긴 한가 보더군요

배경이 되는 '망자의 날'은 아즈텍 문명부터 내려오던 멕시코의 풍습인데 가톨릭이 들어오면서  가톨릭의 '만성제'와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성제는 축일이 없는 성인을 기리는 날인데  우리도 알고 있는 할로윈이 바로 만성제의 전야제라고 합니다 '망자의 날'은 결국 조상을 기리는 풍습입니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이 우리의 제사문화입니다 제사를 하는 이유가 조상을 기리고 조상의 보살핌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고 합니다

 

 


아메리칸 원주민과 우리 민족의 조상이 같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우리의 조상이 알래스카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근거로 언어와 관습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간략한 줄거리는 미구엘은 음악을 미친듯이 좋아하지만 집안에서는 음악을 못하게 합니다 망자의 날에 장기자랑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기타를 훔치다가 사후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고조할아버지 헥터를 만나고 왜 집안에서 음악을 금지시키는지 이유가 고조 할아버지 헥토르와 고조 할머니 이멜다의 갈등때문이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은 지나친 스포같아서 줄입니다)

<코코>는 가족주의애니메이션인데 조상을 기리는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해서 5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앞으로 가족주의가 몇 대까지 올라갈려는지

<코코>도 모성을 부성보다 위에 두고 있습니다 헥토르는 음악을 위해 아내 이멜다와 딸 코코를 두고 떠납니다
이멜다도 음악을 좋아하지만 음악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고 생계를 위해 신발을 만들죠

왜 하필 신발일까라는 생각을 하니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나 '신발 선물을 주면 신고 도망간다'라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이런 속설이 멕시코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떠난 발걸음(신발)이 돌아오는 발걸음(신발)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헥토르와 이멜다의 헤어짐은 바로 딸 코코가 생겨서입니다 영화의 갈등은 코코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제목이 코코인 것 같더군요
모성은 음악보다 딸을 부성은 딸보다 음악을 선택한 거죠

하지만 제단에 올린 사진에서 보이듯이 헥터의 얼굴만이 찢겨 있습니다 헥터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기타는 접혀진 채로

코코는 아버지 헥터의 찢긴 얼굴 사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멜다와 코코는 끝까지 헥터를 기다린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움과 원망도 갖고 있었겠죠
 

 



이멜다와 코코 둘만의 사진이 없었을리가 없죠

미구엘은 아마도 헥터의 음악적 재능과 적성을 타고난 듯하더군요 하지만 헥터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죄로 이멜다 이후로 이멜다 집안은 음악 금지령이 내려집니다

모계 쪽은 가족의 결속력을 우선시하고 부계 쪽은 외부에서의 성공을 우선시한다는 고정관념처럼 보이더군요

미구엘에게 친가쪽의 음악적 재능이 복이라면 헥터의 원죄는 족쇄가 됩니다 외가쪽의 안정적인 보살핌은 든든한 인생의 울타리라면 음악금지령은 삶의 족쇄가 되기도 하죠

미구엘의 성장기로 본다면 이런 족쇄들을 푸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집안의 반대, 가업승계와 꿈의 갈등이라면 주인공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나중에 성공한 후에 가족과 화해하는 과정이 일반적입니다

 

 



<코코>는 미구엘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극복 과정이 따뜻합니다  죽어서도 풀지 못한 헥토르와 이멜다와 코코의 한을 사후세계까지 가서 풀어내죠 가족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헥토르의 억울한 죽음과 명성도 되찾아 옵니다
어쩌면 미구엘이 사후세계에서 헥토르를 만나 그가 가족을 버린 것을 뒤늦게 절실히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미구엘도 헥토르와 비슷한 길을 갔을지도 모릅니다

결말은 미구엘은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기타 치고 노래하며 끝납니다

이제 족쇄는 다 풀리고 친가 쪽의 음악적 재능과 외가 쪽의 든든한 보살핌으로 헥터처럼 음악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친가와 외가의 화해와 결합 가화만사성인거죠
 
따라서 <코코>는 성공이 아니라 가족주의에 초점을 맞춘 영화입니다

치차론의 죽음이 인상깊더군요 사후세계에서의 죽음이 이승과 연결된다는 거죠 사후세계는 많은 종교와 전설속에서 많이 다루어지죠 공통점은 이승과의 연결성입니다 이승에서의 한과 죄는 사후에도 계속된다는 경고겠죠
 
 

 


치차론은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기타를 빌려주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헥토르의 노래를 들으며 죽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결국 죽으면 다 놔두고 가는 것이죠 기타도 돈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불러주는 노래(관심)만이 안식을 줄 수 있는 거죠

죽는다는 것은 결국 이 세상에서 잊혀진다는 것이죠 사후 세계의 해골들이 기억되어지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외로움 고독함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기억이란 다른 말로는 사랑과 관심이겠죠

 



아마도 우릴 기억해주는 것은 대개 가족일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해 줄까라고 묻고 있는 듯 하더군요

리가 후손을 남기는 이유는 우리가 기억되고자 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젠가 기억속에서 잊혀진다고 해도 우리의 흔적은 바로 유전자로 남게 되는 거죠
 이런 바램이 우리도 멕시코인도 조상을 기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후손이 우리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평가가 좋던데 개인적으로는 괜찮은 영화지만 최고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따뜻했지만 가족주의가 그렇게 새롭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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